여성 국극은 무엇이었을까?
해방 뒤
여성 국극은 여성들끼리 모여서 했던 창극으로, 기존의 창극은 소리 중심의 공연양식이었지만 여기에
소리와 춤. 그리고 연기가 곁들여진 공연 예술이었다.
최고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였지만 1960년대 말에 사라진 민족 음악극의 하나였다.
여성 국극은 판소리의 복잡한 음악적 방식을 버리고 ' 연극소리 ' 라는 단순한 선율의 형태를 한 새로운
소리 세계의 장르가 되었다.
반주 악기는 북 대신 장구를 사용했고, 자연스러운 춤을 췄다는 게 남여 혼성창극과 다른 점이다.
여기에 더해 여성국극의 대표적인 인물 임춘앵은 검무, 승무, 살풀이 등의 전통춤의 명인이었기에 여성
국극인들은 전통적인 우리의 소리에 맞는 춤, 연기, 극적 진행까지 갖춰지면서 독특& 대중적인 음악극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성 국극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1909년 관기 제도가 철폐됨에 따라 가곡, 가사, 시조 뿐 아니라 판소리까지 배우게 된 광대 집안의 여자들
은 무당보다는 기생이 되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던 1930년대 김소향, 박월정, 박녹주 등의 여성
명창들은 기생조합을 떠나 순수 명창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남자들만 유세하는 전통 국악판에
염증을 느끼고, 1948년 ' 여성국악동호회 ' 를 만들게 되면서 이 여성 소리꾼들은 < 옥중화 > 라는 공연을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며 여성국극이 시작되었다.
그 후, 1949년 2월 < 햇님과 달님 > 으로 대성공과 함께 11월 < 황금돼지 >, <햇님과 달님후편 >이 막을 올리며
비로소 여성 국극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에도 그 행보는 막힘없이 이어지면서 임시 수도였던 부산극장을 중심으로 <사랑의화원>
<가야금 >, <쌍둥왕자 > 등 성황리에 공연 되었다. 인기가 많아지면서 1955년에 약 12개의 여성 국극단이 활동함에
있어 최고의 전성기였다.
힘들게 살던 시대였고,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성국극에선 항상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고,
서로 순정을 지키며 사랑하는 해피엔딩이었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기에 여성국극은 힘든 삶을 살던 여성들에게 꿈을 선사하는 예술이었다. 당시 여성국극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외국 작품도 많이 번안해서 공연했다. ‘일제강점기에 쇠퇴한 전통음악, 국악을 대중 눈높이와 맞춰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된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피엔딩 연기 ‘아이돌’ 못잖은 인기
원로 조영숙씨는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와 자루에 돈을 쓸어 담고 발로 밟던 때라고 그 당시 회상을 떠올렸다는 기사가
나와있다. 당시 최고의 남장 배우였던 조금앵 선생은 팬이었던 여고생의 간곡한 청으로 가상 결혼식까지 올리고 기념사진
을 남기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어서 이소자 배우는 1951년 여성국극 배우로 데뷔해 한국전쟁 당시 피난 수도였던 부산에서 공연을 했지만 그녀는 ‘소리’(판소리)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늘 조연 자리에 머물러야 했지만, ‘가다키’(남성 역할을 맡은 조연으로, 악역을 뜻하는 일본말)로는 이름을 알렸다. 이소자는 당대 여성국극 스타로 남성 주인공을 주로 맡았던 임춘앵을 해코지하는 남성 역을 도맡아 했기에 혈서가 적인 연애편지까지 받을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었다. 그 때의 가수 패티킴이 ‘이소자는 내 마음속 스타’였다고 회고할 정도였으니까 아이돌 팬덤처럼 엄청 난 인기를 끌었었다.
“극장에서 공연이 끝나면 팬들이 집에 안 가고 구름처럼 극장 앞에 서 있었지. 여성국극 배우들이 극장을 빠져나갈 때 얼굴 한번 보고, 손 한번 잡아 보려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북한 원산에서 사범학교를 나온 조영숙은 이소자와 같은 해 데뷔한 그녀는 ‘춘향전’에서 방자 역을 많이 해 ‘삼마이'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에서 유래된 말로, 웃음을 담당하는 조연)로 불렸다. 그녀는 “여성국극 단장이 집에 금덩이 대여섯개를 갖고 있을 정도로 여성국극은 인기가 있었다”며 “하루에 공연을 세번씩 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인기가 있었기에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임춘앵의 대역배우를 할 만큼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1960년 여성국극은 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1. 영화의 등장 : 국산 영화 진흥정책의 발전으로 1960년대 영화의 시대가 찾아왔고, 일반 가정에서도 TV 시청이 가능해져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줄어듬
2. 고전적인 내용 : 당대의 시대적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가상이 창작사극류를 추구하는 바람에 도태됨
3. 정부 지원의 부재 : 1962년 국립극장 전속의 국립극단이 창단되었으나, 여성 국극 자체를 질 낮은 통속예술로 취급했고
주요 무형문화제 제도 수립에도 외면 당했고, 언론에서는 남장여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문제 삼으며 비난과 스타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부족이 큼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 3세대 여성국극의 부활
여성국극제작소(공동대표 박수빈·황지영)는 여성국극 ‘레전드 춘향전’ 무대에 올렸다. 이 무대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1세대 이소자(93)·조영숙(90), 2세대 이미자(79)·이옥천(78)·김성예(70), 3세대 박수빈(38)·황지영(31)이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함께 하는 기획이유를 박수빈 대표겸 배우는 이렇게 설명했다.
“ 1·2·3세대 여성국극인의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1·2세대 선생님들이 살아 계실 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여성국극은 계보도 있고 역사도 있죠. 이런 전통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걸 무대에서 전달하고 싶어요. 선배들 열정이 후배들에게도 이어져 지속 발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 드릴 생각입니다.”
2020년 여성국극제작소를 함께 꾸린 박수빈과 황지영의 연결고리는 1세대 조영숙이다. 두 사람 모두 조영숙의 제자다. 판소리를 배우던 중학생 박수빈이 1998년 서울 정동극장에서 조영숙과 여성국극 무대에 오르며 인연을 맺었다. 박수빈은 “판소리 선생님은 보통 무서운 분들이 많다. 제가 잘 못하면 고함을 치시거나 혼을 내기도 했다”며 “(조영숙) 선생님은 조곤조곤 얘기하시면서 ‘괜찮아. 이렇게 한번 해봐’라고 얘기해주신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황지영은 9살 때 조영숙의 제자가 됐다. 황지영은 “어릴 때부터 여성국극에 관심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자가 됐다”며 “선생님은 ‘여성국극인들이 하나로 단결해 공연을 활성화하고, 여성국극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도록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에도 여성만으로 공연하는 전통극이 있다. 중국의 월극은 1906년 옛 월나라 땅인 저장성 일대에서 생겨나 상하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월극은 경극과 함께 중국의 4대 전통극으로 꼽힌다. 월극은 섬세하고 서정성과 우아함을 갖춘 예술 장르로 명성을 얻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의 여성극은 다카라즈카다. 다카라즈카는 일본 간사이 지역 고베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이면서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여성 가극단을 이른다. 일본 철도회사인 ‘한큐 전철’의 창립자인 고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에 창단했다.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 일본의 순정만화, 문학작품을 활용해 공연한다.
여성국극인들은 중국·일본의 여성극을 어떻게 평가할까? “월극은 중국 전통적인 느낌, 다카라즈카는 전통을 배제한 느낌을 주는 공연이죠. 반면 여성국극은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서구적인 요소를 가미한 공연이에요. 월극은 문화재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을 받고, 다카라즈카는 대중성을 바탕으로 기업 지원을 받고 있죠. 그런데 여성국극은 정부나 기업에서 지원받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죠.”
두 배우가 말하는 것 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비관심 예술공연으로 취급되어졌고, 협찬은 고사하고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공연이지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여성국극의 부활을 위해선 대중의 관심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웹툰 ‘정년이’가 드라마로 제작되어 주목을 받는 상황은 여성국극 배우들에게 희소식이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뒤 목포에서 홀로 상경한 윤정년이 여성국극단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웹툰은 올해 2월 국립창극단의 창극으로 제작됐고, 티저와 곧 드라마도 방영된다. 주인공 윤정년 역은 김태리가 연기하고 윤정년과 경쟁하는 허영서 역은 신예은이 맡았다. 여성국극단 단장으로는 라미란이, 윤정년의 엄마로는 문소리가 캐스팅되는 등 라인업이 화려하다.
3세대 여성국극인들은 ‘정년이’의 인기가 “여성국극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어 여성국극 팬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크다고 한다.
연극·뮤지컬·오페라·무용·발레처럼 다양한 예술 문화 장르에서 여성국극이 그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나아가 해외 무대에서도 여성 국극의 존재를 알려 수 있는 새로운 공연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950년대 정점을 찍고 70년간 명맥을 유지해온 여성국극이 오늘을 사는 젊은 청춘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여성국극의 화려한 발자취를 적어보면서 의미와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여성 국극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여성 국극단의 공연을 보러 가실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기에 그냥 잊지만 말고, 그 시대를 살았던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의 문화를 공연을 배우들을 조금은 이해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럼 이만 포스팅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남이 알려주는 다양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메종 드 히미코( La Maison de Himiko), 사랑의 무게는 같다 (0) | 2024.08.23 |
|---|---|
| 딱 3주만에 7kg 감량법 (0) | 2024.08.07 |